언더스탠딩MORNING DIGEST · 2026-08-31 · 언더스탠딩🎬 영상

30년 숨겨진 피검사 — 만성염증 지표 HSCRP를 둘러싼 의학계 막장 드라마

언더스탠딩(서울대병원 이승훈 교수 대담)이 심근경색·뇌졸중을 예측하는 만성염증 혈액지표 HSCRP가 왜 발견된 지 30년이 지나서야 의학계에서 인정받았는지, 그 뒤에 숨은 특허 논란과 학계 정치를 파헤친다.

인포그래픽 요약

01왜 콜레스테롤보다 '만성염증'을 봐야 하는가

  • 동맥경화는 혈관벽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대식세포가 제거하는 과정이 수년~수십 년간 반복되며 발생하는 대표적 만성염증 질환이다. 혈관이 좁아지는 동안에도 장기에 혈액이 도달하기만 하면 증상이 없어, 어느 날 갑자기 막혀야만 심근경색·뇌졸중으로 나타난다 — 사전 경고 신호가 없다는 게 핵심 문제다.
  • 급성염증(뇌출혈 주변 염증 등)은 과잉 반응이 장기를 직접 죽일 수 있어 억제 대상이지만, 만성염증은 자극원이 계속 들어오는 상황에서 몸이 타협하며 버티는 과정이라 단순히 '나쁘다'고만 볼 수 없다.
  • 백혈구(호중구) 수치는 사람마다 기저치 편차가 커 만성염증 진행을 판별하는 지표로 쓰기 어렵지만, 간에서 급성기에만 분비되는 CRP(C반응단백)는 평소 0에 가깝다가 문제가 생기면 확실하게 튀어 올라 표준화된 지표로 쓸 수 있다. 정밀 측정이 가능해지며 붙은 접두어가 HS(고감도, High Sensitivity)다.

02폴 리드커 박사의 20년 — 세 번의 NEJM 논문

  • 1997년 하버드대 브리검여성병원 심혈관센터장 폴 리드커 박사가 3만 명 여성 건강 연구 데이터로 "CRP가 높으면(2mg/L 이상, 한국 단위 기준 0.2mg/dL) 심근경색·뇌졸중 위험이 4배 높다"는 걸 세계 최초로 증명 —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(NEJM)에 발표.
  • 2008년 JUPITER 연구: 콜레스테롤은 정상이지만 CRP만 높은 사람에게 스타틴(로수바스타틴)을 투여 — 심근경색·뇌졸중 50% 감소, 사망률 20% 감소라는 압도적 결과로 17,802명 임상시험이 예정보다 훨씬 이른 1.9년 만에 조기 종료됐다. FDA는 위험인자 1개 추가 조건을 달아 승인.
  • 2017년 CANTOS 연구: 콜레스테롤과 무관하게 염증 신호(인터류킨-1β)만 차단하는 항체 신약 카나키누맙(노바티스)으로도 심혈관 사망률이 20% 줄어드는 걸 세 번째로 증명 — 염증 자체가 원인이라는 결론을 확정지었다.

03왜 30년이나 묻혔나 — 승인돼도 안 쓰인 이유

  • 카나키누맙은 3상에 성공했지만 연 치료비가 1인당 약 2억 원에 달해 보험사 어디도 급여를 해주지 않았고, 노바티스는 승인 신청을 스스로 포기했다.
  • JUPITER 연구 성공 후에도 정작 미국 의사들의 HSCRP 검사율은 1% 미만에 그쳤다 — 특허가 2016년에 끝나는 상황에서 스타틴이 이미 잘 팔리고 있었기에 아스트라제네카가 굳이 논란(비판 학자들의 "TRIAL WAS FLAWED" 식 격렬한 반박)을 감수하며 적극 홍보하지 않았기 때문. 미국 심장학회 가이드라인에도 CRP는 각주 수준, 근거등급 2등급으로만 슬쩍 언급됐다.
  • 결정적 배경은 리드커 박사가 "동맥경화 예방 목적의 HSCRP 측정" 자체에 특허를 낸 사실 — 검사장비회사 지멘스와 아스트라제네카의 상업적 이익을 위한 특허라는 소문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며, "저 검사를 가이드라인에 넣으면 쟤만 배불린다"는 반감이 은밀히 퍼졌다(브라카 유전자 특허가 대법원에서 무효화된 사례와 유사한 논란).

04대비되는 두 사례 — 특허를 포기한 과학자들

  • 헬리코박터균이 위궤양의 원인임을 증명한 배리 마셜 박사는 1983년 논문 발표 후 학계에서 조롱당하자, 이듬해 직접 헬리코박터 배양액을 마셔 스스로를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았다. 특허나 상업적 이득 없이 사실만 알렸고, 1995년 미국 국립보건원 공식 인정,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.
  • 소아마비 백신 개발자 조나스 소크는 "이 백신의 특허권자는 인류다"라며 특허를 포기해 전 세계에 빠르게 보급됐지만, 노벨상은 받지 못했다(기초연구자 3인에게만 수여) — 유명세는 얻었지만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.
  • 대조적으로 리드커 박사는 특허를 냈다는 이유로 업적에 걸맞은 인정을 받지 못한 채 '논란의 인물'로 남았다는 게 이승훈 교수의 해석이다.

05반전 — 값싼 통풍약이 판을 바꾸다

  • 미국 밖에서 호주·네덜란드 의사들이 통풍 치료제로 쓰이던 강력한 항염증제 콜히친을 저용량으로 심혈관 고위험군에 투여하는 의사주도 임상시험(LoDoCo2)을 진행 — 심근경색·뇌졸중·사망률 감소를 명확히 증명했다.
  • 이 데이터를 본 오스트리아계 미국 소규모 제약사가 신약 허가를 신청하자, 약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로(2억 원짜리 카나키누맙과 달리) FDA가 이례적으로 부담 없이 승인 — 그런데도 제네릭(20원대) 대비 브랜드약(1~2만 원)이 비싸다는 이유로 의사들이 처방을 꺼리는 등, 여전히 뿌리 깊은 불신이 이어졌다.
  • 그러나 값싼 약(콜히친)까지 효과를 입증하자 더 이상 부인할 명분이 사라졌고, 미국심장학회는 작년(2025년경) 마침내 "이제는 심혈관질환에서 염증을 다룰 때"라고 공식 선언 — 1997년 첫 논문 이후 약 30년 만이다.

06시사점

  • 진행자들은 이 사례를 막스 플랑크의 "과학은 반대자를 설득해서가 아니라 그 세대가 사라져야 진보한다"는 말에 빗대며, 학술적 진실과 무관한 학계 내 세력 다툼·질투가 의학 지식 보급을 수십 년 지연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정리한다.
  • 한국은 아직 콜히친·스타틴을 HSCRP/만성염증 적응증으로 허가받은 제약사가 없어 공식적으로 처방할 수 없는 상태 — 다만 40대 이상은 HSCRP 검사를 받아보고, 생활습관 개선이나 이미 복용 중인 혈압·당뇨·콜레스테롤 약으로도 수치를 낮출 수 있다는 게 실질적 조언이다.
언더스탠딩 · 2026-08-3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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